에르메스는 단순한 명품 브랜드를 넘어, 전 세계 럭셔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지닌 하우스입니다. 180년이 넘는 전통과 장인정신,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덕분에 오늘날까지 ‘가장 가치 있는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버킨백과 켈리백은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제품으로, 각각의 특별한 탄생 배경은 지금도 패션사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에르메스의 브랜드 역사와 더불어, 버킨백과 켈리백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유래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에르메스 브랜드 히스토리
에르메스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파리에서 설립한 마구 공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유럽 귀족들을 위한 고급 안장과 마차 장비를 수작업으로 제작하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에르메스는 처음부터 정밀한 수작업과 최고급 소재를 고집했고, 이는 곧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 교통수단이 말에서 자동차로 전환되자, 에르메스는 가죽 공예 기술을 바탕으로 가방, 트렁크, 액세서리 제작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후 시계, 의류, 스카프, 향수, 주얼리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토털 럭셔리 하우스’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에르메스의 모든 제품은 지금도 ‘한 명의 장인이 한 제품을 완성한다’는 철학을 지키고 있어, 장인정신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켈리백의 탄생 배경
켈리백은 본래 1930년대 ‘사크 아 쿠르로 아(Sac à Courroie)’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가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말안장이나 승마 장비를 담기 위해 제작된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직사각형 형태와 견고한 스트랩이 특징이었습니다. 이 가방이 ‘켈리백’으로 불리게 된 계기는 모나코의 왕비가 된 배우 그레이스 켈리 덕분입니다. 1956년 그녀가 이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잡지에 실렸는데, 당시 임신 사실을 가리기 위해 켈리백을 앞에 들고 있던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가방은 대중적으로 ‘켈리백’이라 불리며 에르메스의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켈리백은 깔끔하고 구조적인 실루엣 덕분에 공식 석상이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지금도 장인 한 명이 최소 20시간 이상 공을 들여 제작하며, 그 과정은 철저히 수작업으로 진행됩니다. 이로 인해 켈리백은 단순한 명품 가방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버킨백의 탄생 배경
버킨백은 1984년, 영국의 배우 제인 버킨과 당시 에르메스 CEO였던 장루이 뒤마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파리행 비행기에서 제인 버킨은 소지품이 흘러내려 불편함을 토로했고, 옆자리에 앉은 뒤마 회장에게 “실용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가방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뒤마는 즉석에서 그녀의 요구를 스케치하며 새로운 가방을 구상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버킨백입니다. 버킨백은 켈리백보다 넓은 수납공간과 실용성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일상과 여행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제작 방식은 동일하게 장인의 손길에 의존했기 때문에 수량은 극도로 제한적이었고, 자연스럽게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가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 버킨백은 희귀 소재나 컬러에 따라 억 단위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며, 리셀 시장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는 ‘투자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두 아이콘의 의미
켈리백은 왕비의 이름에서, 버킨백은 한 배우와 CEO의 우연한 대화에서 탄생했지만, 두 제품 모두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에르메스의 철학’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두 종류의 가방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탄생했지만, 공통적으로 에르메스의 장인정신과 희소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품입니다. 켈리백은 왕실과 고급스러움의 아이콘으로, 버킨백은 실용성과 자유로움을 담은 럭셔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두 제품 덕분에 에르메스는 단순한 패션 브랜드를 넘어 ‘성공과 지위, 그리고 안목의 상징’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